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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2-22 15:20
융(Jung)의 모래놀이심리치료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215  
 
 
융(Jung)의 모래놀이심리치료
 
 
 
 
1) 융(Jung)의 생애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1885년 7월 26일 스위스 동북부 투르가우 주(州)의 케스빌 마을에서 요한 융(Johann Paul Achilles) 목사인 아버지와 에밀리에 융(Emilie Preiswerk Jung)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961년 6월 6일 퀴스나하트에 있는 자기 집에서 제자들에 둘러싸여 서거하였다. 융(Jung)의 아버지는 대학에서 구약성서 아가에 관한 논문으로 문헌학전공의 철학박사가 되었는데 학자의 길로 가지 않고 가난한 시골 목사가 되어 농부들과 그 아이를 보살핀 사람으로 자상하고 친절하여 신도들의 사랑을 받았다. 유년기에 융(Jung)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라틴어를 배웠으나 가정적으로는 그리 행복한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융(Jung)의 어머니는 바젤시의 사교 사뮤엘 프라이스베르크와 프랑스의 신교도로 독일에 온 파버(Faber) 집안의 부인 사이의 막내딸이었다. 그녀는 그림책을 통해 외국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해 주었고 쾌활하고 소탈한 한편 섬뜩할 정도로 예리한 직관을 가지고 있었다.
융(Jung) 집안은 독일의 마인치 지방 출신인데 융(Jung)의 할아버지 때부터 스위스에 정착하여 스위스 시민이 되었다. 융(Jung)의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모두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로 바젤지방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친 할아버지 칼 구스타브 융은 외과의사이며 교수로서뿐 아니라 대학행동가로서 낙후된 바젤대한 의학부와 의료원을 개혁하여 크게 발전시켰고 정신박약아의 양호시설을 짓고 시민병원을 확장하였으며 정신병원의 설립을 주장하는 등 매우 진취적이며 강직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융(Jung)의 외할아버지 사뮤엘 프라이스베르크 목사는 쥬네브의 신교복음교회 신학교에서 히브리어와 구약신학을 가르친 일이 있고 뒤에 바젤 교구의 부름을 받아 목사직을 수행하면서 히브리어의 교수자격을 얻은 매우 관대한 성품의 사람으로 여러 가지 일화를 남기고 있다. 융(Jung)은 친할아버지나 외할아버지를 생전에 만난 일이 없다. 그러나 융(Jung)이 외가의 소질을 이어받아 비합리적인 타계를 생생하게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융(Jung)의 심성이 지닌 독특함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년기의 가장 주목할 갈등은 심의 본체에 대한 물음이었다. 개신교 목사관에서 듣고 보고한 것들은 어린 융(Jung)에게 하느님과 예수님의 인자함과 죽은 이들을 자기 곁으로 데려가는 무서움이 교차된 복합적인 인상을 남겼다.
융(Jung)은 11세에 바젤시의 김나지움(대학예비고)에 들어간다. 예수님과의 긍정적인 관계형성이 점점 어려워지자 신의 이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고 융(Jung)은 말한다.󰡐나는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신은 별로 모순이 없는 존재 같았고 그 기도는 나에게 어쨌든 만족감을 주었다. 신은 나의 불신감 때문에 분규를 일으키지 않았다.김나지움에 들어간 다음 해 융(Jung)은 길거리에서 어떤 소년의 습격을 받고 쓰러진 뒤 기절발작을 하였다. 그것은 꼭 학교에 가야 할 때, 숙제를 끝내야만 할 때 일어났고 그래서 반년 이상이나 학교를 멀리했다. 그 발작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이른바 이차 이득을 가진 신경증적 발작으로 융(Jung) 자신도 당시 그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피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융(Jung)의 경우 이것은 도피를 허용치 않는 자신의 성실함으로 치유되었다. 그 무렵 어느 날 짙은 안개 속에서 빠져 나오듯󰡐나󰡑, 자아의 주체성을 처음으로 인식한 융(Jung)은 자기 마음속에 두 개의 인격이 존재하는 것을 느낀다. 이것을 그는 제1호, 제2호 인격이라 했다.
정신적 대극의 문제는 융(Jung)의 분석심리학설에서 일찍부터 다루어지고 있다. 자아의 탄생과 심리적 대극을 융은 청소년기에 자기 안에 있는 두 가지 성향으로 경험하였던 것이다. 열두 살의 융(Jung)은 어느 날 학교에서 나와 바젤 뮌스터 광장에서 성당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성당 지붕에 내려 쪼이는 찬란한 햇빛을 보며 감동하고 교회의 아름다움, 이 모든 것을 창조한 신, 하늘 멀리 황금의 왕좌 위에 않아 있을 신을 생각한다.
융(Jung)은 복음서를 비롯하여 신의 본체에 관한 책을 찾아 읽었다. 16세에서 19세 사이에 융(Jung)은 자신에 대한 회의와 불만에서 빠져나왔다. 융(Jung)은 이것을 제1호 인격의 강화, 합리적이며 혁신적이고 지성적인 측면의 강화로 보았다. 그는 피타고라스(Pythagoras), 헤라클레스(Hercules), 엠페도클레스E(mpedokles), 플라톤(Plato)을 좋아했다. 융(Jung)은 쇼펜하우어와 칸트와의 관계에서 칸트(Kant)로부터 더 깊은 감명을 받게 되고 칸트(Kant)의 순수 이성비탄을 통하여 쇼펜하우어의 염세적인 세계상보다도 더 큰 깨우침을 받았다고 했다.
1896년 융(Jung)이 21세 때 그의 아버지가 작고하였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생계가 더욱 어려워진 융(Jung)은 대학의 조수를 하든가 골동품 상점에서 물건을 팔거나 백부로부터 돈을 빌려가면서 공부를 했다. 대학시절을 융(Jung)은 아름다운 시절로 회상하고 있다. 많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친구를 사귀던 시절이었다. 학생회에 들어 당대의 사상가들을 섭렵했다.
1900년 융(Jung)은 부르크휠츨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취리히 대학 정신과 병원 주임교수로 있던 블로일러(1857~1828) 밑에 차석 조수로 들어갔다. 블로일러 교수의 진취적인 학문적 기풍이 대학을 갓 졸업한 융(Jung)의 연구의욕을 자극하였다.
융(Jung)이 프로이트(Freud)를 접한 것은 꿈의 해석에 관한 논문을 소개하면서 부터이다. 융(Jung)은 프로이트(Freud)의 인간심리를 사변적인 이론에 의해서가 아니고 스스로의 체험을 통하여 진지하게 탐구해 가는 것을 보고 경험론적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의식 너머의 마음의 심층을 처음으로 과학의 대상으로 삼아 살펴가는 것에 매료되었으며 자기가 프로이트(Freud)의 성욕설을 이해 못하는 것은 경험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프로이트(Freud)와는 만난 지 6년 만에 결별하였다.
융(Jung)은 의식으로 압도해 오는 무의식의 환상 충동을 그대로 살려 쫓아가면서 그 향방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돌을 가지고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드는 소년시절의 놀이를 재현하는 것이었다. 밀려드는 환상을 그림으로 그리며 추적하거나 환상을 적극적으로 실체화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살로메라는 소녀의 환상을 본다. 그 뒤에 엘리아의 모습으로 발전된 또 다른 노인 상을 본다. 그 첫 출현은 황소의 뿔을 달고 날개를 가진 노인상으로 나왔는데 융(Jung)은 그를 필레몬(Philemon)이라 불렀다.
필레몬(Philemon)과의 대화를 통해서󰡐나(자아)󰡑와는 다른 우리 마음 속의 타자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다. 1912년 융(Jung)은 볼링겐의 호숫가에서 주워 모은 바위와 돌을 가지고 모형 마을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이런 행동은 그에게 환상에 대한 흐름을 인식하게 해 주었으며 이에 대한 자신의 느낌들을 기록해 나갔다. 1913년부터 1919까지의 6년간을 어떤 사람은 융(Jung)의 생애에서 고독한 탐구의 시기였다고 말한다. 이 기간 동안 그의 근원적 유형론이 틀을 잡기 시작한다.
1923년에서 1925년 사이에 융(Jung)은 미국 지역의 인디언을 답사한다. 그는 여기서 유럽인과의 대화에서는 느낄 수 없던 커다란 감흥을 느꼈다. 태고 적 부터 알려진 그리고 거의 잊혀진 것에서 통로를 발견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1928년 연금술에 관한 강의를 시작하고 중국의 도교에 심리학적 해석을 하기도 했다. 연금술사의 노력 속에 개성화 과정이 상징적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1944년 심리학과 연금술, 1946년 전이의 심리학 그리고 만년의 대작 융합의 비의 등 많은 저작을 내놓았다. 1948년 정신요법에 대한 본격적인 수련장을 만들기 위해 체·게·융 연구소를 스위스 취리히에 설립하고 후진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1959년 그는 아동의 원형에 대하여 버림받거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그리고 강력한 힘에 억눌려 있는 아동은 모두 막연하고 애매한 출발을 보여주지만 승리에 찬 형태로 끝맺는 특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 내에 있는󰡐영원한 아동󰡑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경험이나 부조화, 장애 등을 갖고 있으나 인성의 최고의 가치 또는 인성의 무가치성을 결정하는 수많은 신성한 특권도 가지고 있다(Lois J. Carey,1999). 1961년 86세의 고령으로 영면하기까지 융(Jung)은 그의 사상의 많은 것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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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융(Jung)의 사상적 배경
융(Jung)은 계몽주의 운동에 대해 반발했던 문화적 전통 속에서 성장했다. 계몽시대인 18세기에 이르러 사상(事象)위주의 경험주의가 일어났다. 계몽주의의 핵심은 확고한 낙관주의였다. 계몽주의는 이성(reason)을 원동력으로 확립하고자 했으며 정서의 존재를 인정하나 그것은 주로 이성적 과정을 혼란시키는 요소로 보았고 결국 분석적 방법의 적용을 통해 모든 문제가 해결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계몽주의자들의 이러한 낙관주의적인 확신이 가능했던 것은 과학과 역사의 발전이 단지 물질적 생존조건을 개선시켜 줄 뿐만 아니라 행복  및 생의 의미와 같은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들까지도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러나 점차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이성과 정서간의 통합이 구축되기 시작했고 세계는 반대극들이 즉 철학과 심리학, 화학과 생리학들이 상호작용하는 활동 무대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19세기 계몽주의의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사실성 사이에서 오퀴스트 콩트(Ois-Xavier Comte)가 내세운 실증주의가 태어났다. 실증주의는 과학과 역사의 발전에 대한 계몽주의자들의 믿음, 즉 이성에 바탕한 과학은 곧 진보를 낳는 다는 믿음이 깔려있었다. 낭만주의 사조가 출현한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심리적인 삶 속에서 상징적 이미지가 지니고 있는 중요성이 다시 인식되고 있다. 점차적으로 계몽주의는 자연과 인간 이성과 정서간의 통합이 구축되기 시작하였고 철학과 심리학, 화학과 생리학에서도 반대극들의 상호작용을 하는 활동무대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인간에게 의식만이 아닌 무의식의 주장을 한 라이프니츠(Gottfrid Wilhelm Leibniz)의 철학적 주장이 부각되었으며 초심리학(parapsychology)도 열렬히 연구되었다. 그 시대의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카루스(Carl Gustav Carus)는 융(Jung)의 연구에 무의식에 창조력과 치유력을 부여하였으며 집단무의식 개념의 전조가 된 개념이었다. 또한 융(Jung)의 원형개념은 철학자 칸트(Kant)의 지각의 선험적인 보편적 형태의 개념 영향을 받아 심리학 개념에서 원형의 개념으로 바꾸었다.
융(Jung)의 사상은 원형에 기초하고 있고 그 원형은 대극의 합일을 자극하여 전체가 되게하고 전체의 실현과정이 개성화라고 한다. 그는 고대 희랍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다. 즉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의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화하는 영원한 흐름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끝없이 오가는 흐름인 것이다. 한쪽 측면이 오래 지속되면 자동적인 움직임으로 다는 쪽이 힘을 얻게 되는 왕복과정으로 에난티오드로미아(enantiodromia)로 대립물을 향하는 원리를 재인식한 것이다. 여기서의 대립물은 싸워 한쪽이 이기는 것이 아닌 정신활동에서의 반대되는 양측이 모두 필요함을 말한다. 융(Jung)은 정신적 에너지 개념은 보상적인 대립물들의 활동으로 나타나고 보상의 사례는 삶에서 나온다고 했다(김형섭 역, 1997). 또한 융(Jung)은 19세기 이후 합리주의 사조 때문에 거의 돌보아지지 않던 연금술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며 유럽의 기독교 문화의 남성적이고 권위적인 경향보다 연금술의 여성적인 원리의 중요성을 느끼며 집단의식으로부터 억압된 면을 의식화함으로써 진정한 인간의 삶을 회복시킬 수 있는 전체성을 본 것이다. 이는 융(Jung)이 연금술에 대한 관심은 대극의 합일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대극의 합일은 정신의 전일성문제이기 때문이다. 융(Jung)의 자서전에는 그가 내면적으로 겪었던 환상, 꿈, 불안들이 기록되어 있고 그가 유년기에 꾼 꿈은 뒤에 종교심성론과 심리학적 신상관을 예시하고 있었다. 소년 시절 마술절 환상과 놀이는 중년에 이르러 연구하게 된 중세의 연금술과 관계가 있다. 융(Jung)의 분석심리학은 정신의 전체성 실현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프로이트(Freud)와의 만남을 통하여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 융(Jung)이 프로이트(Freud)의 학설을 접한 것은 1900년 꿈의 해석 에 관한 논문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융(Jung)은 프로이트(Freud)를 만나 인간심리의 무의식에 대한 과학적 태도에 감명을 받고 정신분석학회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으나 프로이트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성욕설󰡑과󰡐리비도의 변환과 제 상징에서 기본입장의 차이를 드러내게 되어 결별하게 된 후 융(Jung)은 독자적인 관찰과 경험을 통해 분석심리학을 주창하게 되었다.
융(Jung)은 인도 종교에 대한 남다른 호기심은 후년에 동서의 종교를 통합할 수 있는 사상을 낳게 되었다. 그는 청년기에 소펜하우어(Schopenhauers)와 괴테(Goethe)의 저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 자신의 내부의 제2의 인격을 인식하는 사건이 기술되고 있고 당시의 기독교 신앙과의 갈등은 기독교 종파를 넘어선 보편적 종교심성으로 그의 시야를 확대하게 하였다. 융(Jung)은 동양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데 그가 처음 동양에 발을 디딘 것은 그의 심리학설이 성숙된 1920년 북아프리카 알제리였다. 그리고 1938년 인도를 여행하면서 인도철학과 인도종교사에 책을 많이 보았으며 캘커타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그의 사상은 이미 완숙해 있었고 전 세계의 지성으로부터 많은 반향을 얻고 있었다. 특히 융은 인도와 중국의 전통사상과 불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융(Jung)은 자아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자기󰡑를 중심으로 한 삶으로의 변화를󰡐개성화과정이라 하는데 자기 라는 개념은 불교의 불성, 도교의 도(道)의 개념과 유사하여 동양의 전통사상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융(Jung)의 치료철학 접근은 아동의 감정수준에 머무르는 것이며 아동의 드라마와 놀이가 전개되는 대로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다. 치료사는 아동의 놀이를 눈으로 보고, 감정을 반영하고 그에 대해서 언급한다. 치료사는 아동으로부터 지휘를 받는다. 치료사는 반영하고 조절되면서 표현되고 연기(enact)되는 느낌과 사고의 범위에 대해 말해 주면서 본질적으로 아동과의 감정 상태를 발달시킨다.
결론적으로 그의 사상은 그가 보인 여러 영역에 관한 폭넓은 관심 때문에 포괄적 정신이 미칠 수 있는 거의 모든 영역에 이르기까지 섭렵하고 있다.
 
 
3) 융의 모래놀이심리치료
칼 구스타프 융(Jung, 1875~1961)은 11세 때 모래를 쌓던 놀이를 했던 것이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에게 큰 자산이 되었음을 시사했다. 융(Jung)은 나는 무의식의 충동으로 나 자신의 의식이 귀속되어 있다.󰡓고 했다. 이는 모래놀이의 내담자가 치료과정에서 지적하는 것부터 의식적이고 활동적으로 연관되어 있어서 내담자들의 열등감과 무력감을 극복하는 것을 도울 수 있는 큰 가치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융(Jung)은 내안에 모래놀이를 하던 작은 소년이 아직 있다.고 했다. 이는 성인은 장조성이 부족하지만 그의 창조적인 삶의 재구성은 아름다움 방법 안에서의 모래놀이에 있어서 창조적인 삶과 치유되어감의 시작이 모래놀이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융(Jung)은 나의 명료한 사고의 과정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의 현재 희미한 느낌을 명확하게 환상을 깨달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손으로 하는 방법으로 막연한 불안감의 괴로움을 모래상자 안을 통하여 서서히 선명해진다는 것으로 모래놀이심리치료의 가치로움을 말했다. 융(Jung)은 프로이트(Freud)와 리비도(Libido)의 본질에 대한 기본적인 의견의 불일치 때문에 프로이트(Freud)와 결별하게 되는데 프로이트(Freud)에게 있어 인간의 중심적인 충동은 성욕(sexual)이었고 중요한 심리과제는 외디프스 콤플렉스의 해결이었으나 융(Jung)에게 중심적인 충동은 개별화 과정 - 부모상으로부터 독립하여 그 자신의 독특한 성격과 정체감을 발달시키려는 충동이었다. 융(Jung)에게 리비도(Libido)는 가능성의 에너지이고 성장하려는 욕구이며 퇴행 욕구에 의해 채워지지만 변화하는 것은 개인의 발달 단계에 따라 달라질 것이었다. 즉 성장과 의미의 추구는 인생의 전반기와 후반기는 다를 것이라고 보았다. 융(Jung)은 인간의 성격이 필연적으로 어떤 한 방향으로만 발달하고자하는 경향이 있어서 심리의 기능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발달하여 어떤 기능이 치우치게 발달하기도 한다고 보았다. 그는 내향적, 외향적 특성과 자아의 네 가지 기능인 사고, 감정, 감각, 직관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이 중에서 상대적으로 덜 발달한 기능은 주로 무의식에 남아있게 되며 원초적이고 잘 발달하지 못한 상태의 이 같은 기능은 개성화나 전체성 통합에 방해가 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무의식 속에 있는 이러한 기능들이 자아의식에 비추어 강화되고 발달될 수 있도록 보상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 같은 무의식과 자아의식과의 교량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판타지(Fantasy)나 상상이 하게 된다. 특히 자아의식이 능동적으로 무의식으로부터 끌어낸 판타지(Fantasy)는 그 후 적극적 상상으로 바뀌어서 그림, 극적인 대화, 모래놀이 등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분석심리가들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놀이치료는 개성화 과정에 대한 전체성과 화해의 감정을 이루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놀이치료는 아이들처럼 놀이에 대한 진지함을 가지고 다시 놀게 함으로써 성인들이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살리고 무의식적인 판타지를 방출해 내도록 하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겪는 내담자의 경우에는 상징을 통해 자기가 충분히 표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료 목표는 내담자의 자기가 치료 속에서 스스로 정리되거나 표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1902년 융(Jung)은 한 아동의 꿈들을 분석하면서 그것이 부모의 미해결된 투쟁들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종종 아동들은 부모의 해결되지 않고 발달되지 않은 부분을 표출해 낸다. 그러므로 치료적인 면에서 아동들의 부모가 치료를 받게 된다면 대부분의 아동은 부모의 투사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부모와 아동의 개별화과정을 각각 발달시키고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융(Jung)의 모래놀이심리치료에 대한 관심은 융(Jung)의 손자들이 칼프(Kalff)의 집에서 모래놀이를 접하게 되었고 이러한 놀이과정을 통해 그녀가 가진 아동심리 치료사로서의 남다른 능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융(Jung)은 로웬펠드(Lowenfeld)의 아동을 위한 모래놀이에 대한 강연을 통해 깊은 감명을 받았고 칼프(Kalff)에게 아동심리치료에 대해 공부하도록 권유하면서 로웬펠트(Lowenfeld)를 소개했다. 영국의 로웬펠트(Lowenfeld)에게서 세계기법을 배운 칼프(Kalff)는 융(Jung)의 개성화 과정을 접목시켜 자신의 모래놀이심리치료를 완성하였다. 모래놀이심리치료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개성화 즉 자기 실현이다.
아동기의 놀이는 인간의 본능과 불가분의 관계다. 융(Jung)의 분석심리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의 본능은 집단무의식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본능은 본능적 행위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본능은 전혀 의식적 동기 없이 저절로 요구되어지는 것으로 주로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충동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본능에 따르는 것은 각 개인이 생물학적 존재로서 종의 특질에 맞게 행위하는 것을 말하며 이를 본능적 실현이라고 하며 이 자체가 바로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전형적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본능적 충동은 아동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신체활동이 되도록 주어지며 이는 무작위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당위성으로 나타나며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체험으로 나타난다. 본능적 충동을 의식으로 통제하지 않고 그대로 형상화하여 재현한다면 점차 충동은 그 자체로 어떤 규칙이나 질서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영유아기에는 생명 현상 유지하는 행위가 되며 아동기에는 놀이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융(Jung)은 집단무의식을 개념화할 때 놀이가 역동적인 판타지의 형태로서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을 가져오는 기능을 한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그는 바람직하거나 창조적인 작업은 모두 상상력의 소산이며 그들의 근원이 바로 유아기의 판타지(Fantasy)라고 말했다. 이것은 예술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은 판타지(Fantasy)에 연유한 것이다. 또한 판타지(Fantasy)의 역동적인 원칙은 놀이에도 나타난다. 그러므로 융(Jung)은 판타지를 가지고 놀지 않고서는 창조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없다고 보았다. 즉, 그는 판타지(Fantasy)의 역동적 측면으로서 놀이를 발견하였다. 따라서 놀이가 이해하고자 했던 판타지(Fantasy)를 자유롭게 포현하도록 하며 판타지(Fantasy)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인 감정을 가지도록 하였다. 또한 이러한 적극적 감정은 새로운 수준의 무의식적 판타지를 가능케 한다고 보았다. 비록 융(Jung)이 아동과 직접 일한 적은 없지만 정신의 자기 - 치유 잠재성, 인간의 행동을 조직하는 데에서 원형(Achetype)의 역할, 그리고 치유와 변형에서 타나나는 창조적 과정(놀이, 그림, 드라마, 글쓰기)이 중요하다는 믿음 때문에 그의 이론과 치료방법은 아동 심리치료에 많은 것들을 제공해 왔다. 융(Jung)의 원형의 개념은 그것이 단순한 지적개념이 아니라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능력으로 그것이 하나의 상과 감정(image and emotion)으로 나타나며 원형의 수는 무수히 많다. 융(Jung)은 마음의 심상을 표현하는 작업의 의의는 무의식을 활성화하고 동시에 그 속에 묻힌 창조적 기능을 자극하여 내담자의 무의식에 잠재된 자기 치유능력을 발휘하게 하는데 있다고 했다.
융(Jung)은 인간의 마음에는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의식의 조정자 역할을 하는 자아가 있으며 이들은 다른 체계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보았다. 의식이란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모든 내면세계며 자아는 그러한 의식의 중심에 있다. 무의식이란 아직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내면세계로서 물론 자아의 통제 밖에 있다. 융(Jung)은 프로이트(Freud)의 주장과는 달리 무의식에는 개인적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보았으며 생명의 원천인 동시에 창조적 가능성을 지닌 무의식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였다. 특히 자아실현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의식을 통제하는 자아와 마찬가지로 무의식의 중심이 되는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 자기실현 또는 개성화의 과정은 무의식 속에 파묻혀 있는 원형적 자기를 자아의식이 받아들여 실천에 옮기는 능동적인 행위를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의식의 중심을 자아로 보고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성숙의 목표는 의식 층과 무의식 층을 모두 포함한 전 인격의 중심인 자기완성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성화 과정을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의식 층에 억눌려서 남아 있는 부분이나 아니마(anima), 아니무스(animus), 그림자(shadow), 페르소나(persona)와 같은 무의식적인 원형이 의식으로 통합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융(Jung)은 자아를 통하여 연상되는 정신적인 내용으로 아는 마음의 의식과 의식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의식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고 이를 모르는 마음의 세계를 말하는 무의식을 막론하고 우리의 정신은 심리적 복합체 콤플렉스로 이루어지며 개인적 무의식과 집단적 무의식 가운데 집단적 무의식을 구성하는 콤플렉스는 다른 말로 원형(Archetype)이라 부른다. 원형이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지리적 차이, 문화나 인종의 차이와 관련 없이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이며 원초적인 행동유형을 일으키는 인지할 수 없는 하나의 조건으로 우리는 꿈이나 신화, 민담을 통해 표현되어 원형의 존재와 특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림자는 의식에 가장 가까이 있는 무의식의 내용으로 자아로부터 배척되어 무의식에 억압된 성격측면으로 의식될 기회를 잃었으므로 미분화된 채로 남아 있는 원시적인 심리적 경향, 심리적 특징들이다. 그림자의 투사는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데 그림자의 투사가 자주 일어나는 것은 투사함으로서 잠시나마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이다. 그림자는 의식화해서 의식에 동화하면 그 내용들은 곧 창조적이면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들이다. 페르조나(Persona)는 가상이란 뜻으로 외적인격을 말하며󰡐어떤 사람이 무엇으로 보이는 것󰡑에 대하여 서로 타협하여 얻은 결과로 진정한 자기와는 다른 것이다. 자기실현의 여정에서 시도되어야 하는 것이 페르조나(Persona)와 나를 구별하는 것이다. 아니마 아니무스는 무의식에 있는 내적 인격의 특성을 말하며 남성의 무의식에 있는 여성적 요소를 아니마라 하고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 요소를 아니무스라고 한다. 아니마 아니무스가 개인적 무의식의 내용이면서 집단적 무의식에도 속하는 무의식의 원형 중에 특수한 원형이어서 자아의식을 무의식의 심층󰡐자기󰡑에게로 인도하는 인도자 또는 매개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니마, 아니무스의 인식을 통한 인격의 통합과 분화는 자기실현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자기실현 또는 개성화는 자기인식의 과정이다. 자기인식이란 무의식의 내용들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이것을 의식화라고 한다. 인식이란 지적인 인식뿐 아니라 감정적인 통찰이라는 점에서 의식화는 깨달음에 가까운 뜻을 가지고 있다.
자기실현은 오랜 분석과정을 요구하는 어려운 작업이며 무의식의 의식화가 진행되어 무의식의 그림자와 아니마, 아니무스에 들어 있던 세력들이 감소하고 의식으로 편입되면 자아의식은 점차 힘을 얻어 종전과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되어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겪는 정상적인 보람이다. 즉 자기실현은 무의식의 의식화 과정으로서 자아에 덮여 씌워진 페르조나(Persona)를 벗기는 일이며 또한 자아를 무의식의 내용의 암시적인 힘에서 구출하여 완전함이 아닌 온전해 지는 것 이라고 융(Jung)은 말한다. 융(Jung)은 모래놀이심리치료를 위해 매우 중요한 세 가지 중점요소를 제시했다.
 
첫째, 나는 의식적으로 무의식의 충동을 보려고 해야 한다. 모래놀이에서 분석을 받는 사람들은 시작부터 바르게 치유과정에 의식적으로 그리고 활발하게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한다. 그것이 그들이 그들 내면의 느낌과 무력감을 이기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이것은 정신 요법에 대단한 가치가 있다.
 
둘째,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내적인 미성숙함을 제외하고 모자랐던 창조성에 대해 말해야 한다. 한 사람의 창조적인 삶 전체를 재건하는 것은 놀랄만한 방법이고 모래놀이에 활력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분석을 받는 사람들이 모래놀이 상황에서 아이 같은 놀이의 몰입이 안 된다면 분석가는 피분석자 자신의 창조성의 보기를 통하여 도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래놀이 활동 중에 신념의 확신을 얻었고 상상 속에 머무를 수 있었으며 누군가를 희미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구체적인 실제 방법의 가치를 보며 공상들, 아닌지 좋거나 나쁜 희미한 기억들, 그리고 우리들을 고문하고 있는 떠 있는 걱정, 천천히 모래 놀이에서 활동을 통하여 보고 머물수 있도록 할 수 있도록 한다. 정신분석을 받는 사람들은 뒤로 걷고, 거리로부터 그것을 보고, 모든 그것과 그들 자신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이 오직 희미하게 느끼기 전에 무엇과의 내적 생활에서의 고통에서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융(Jung)은 우리들에게 모래놀이의 방법을 위해 이 대부분의 가치 있는 참고 할 수 있는 단서를 주었다.
내담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완전한 모래놀이 과정을 제안할 수 없는 것이 본서의 범위이상으로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사례 연구에 더욱 힘써야 한다. 모래놀이작품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은 큰 이점이다. 이는 슈퍼비전이나 혹은 연구 학습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각적으로 내담자의 영혼 프로세스를 서류로 증명할 수 있어서이다. 그러나 사람은 또한 유사한 경험을 경험하였을 때만 그러한 프로세스의 참으로 동정심 있는 식별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외부인에게 내면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이렇듯 융(Jung)의 중요한 개념들은 일상의 사회관계에서도 관찰되기도 하고 꿈속의 이미지를 통해서 반영되기도 하며 모래놀이심리치료에서의 작품에서도 선과 악, 신들의 출현, 투쟁의 장면 등을 통해 반영되며 자신의 신화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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